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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바의 이름은 디디에 드록바이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이다. 아직까지 첼시 역사상 최고의 영입선수이자 최고가치를 지닌 최고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의 전 축구선수이자 선수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코트디부아르와 첼시fc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이 매우 높다.

이런 첼시의 최고칭호를 달고 있는 드록바의 유년시절부터 은퇴까지 알아볼 생각이다.












드록바의 유년시절


드록바는 1978년 3월11일 코트디부아르의 최대 도시인 아비장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은 코트디부아르에서 지냈으나 곧 프랑스에 양자로 보내젔다.

5살때 처음으로 태어난 나라를 벗어나서 프랑스로 온셈이다.

드록바가 축구를 접하게 된것은 그의 삼촌이자 축구선수였던 미셀 고바가 있던 브르타뉴 지역에 위치한 브레스트로 향했다.

그는 삼촌과 함께 브레스트 에서 3년을 보낸뒤 드록바의 고국인 코트디부아르로 돌아갔다.

이후 르망,갱감,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올램피크 마르세유를 2003~04 시즌 uefa 컵 결승전에 올려놓으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된다.

그런 드록바의 능력을 알아본 무리뉴의 강력한 러브콜로 첼시의 감독이 선임되고나서 곧바로 드로그바를 영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1998년 프랑스 디비전 2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으며 2016년 몬트리올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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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바 첼시시절


드록바는 2005년에 에르난 크레스포가 첼시에 임대 영입 형식으로 들어오자, 크레스포와 포지션이 같은 탓에 매우 치열한 주전 경쟁을 해야하였다.

하지만 크레스포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점이나 잉글랜드 생활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끝내 첼시를 떠나자 첼시 부동의 주전이 되어버렸다.

드록바는 탁월한 골결정력으로 짧은시간내 첼시의 없어서는 안될 공격 자원으로 등극하였으며 2005~06시절에는 11개의 어시스트를 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 2006~07시즌에서는 20골을 넣으면서 아프리카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게 되었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부상 및 경기력 기복등으로 인해 인테르나치오날레 이적이 거론되었으나 당시 임시감독인 거스 히딩크가 첼시 지휘봉을 잡으면서 급속도로 경기력을 회복하였다.

또한 안첼로티 감독부임 이후인 2009~10시즌에는 웨인 루니(26골)의 부상을 틈타 29골을 기록하면서 다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참고로 이때 드록바가 패널트킥골은 단 1골이었다.

2011~12시즌 초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과의 마찰로 출전기회가 적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부진이 되었으며 선수생활에 위기가 찾아왔으나 로베르토 디마테오 대행 체제 이후 fc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추가시간에 승부를 결정짓는 득점을 기록하였다.

2012년 5월 19일 드록바는 바이에르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패색이 짙던 88분에 동점골을 넣었으며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5번째 키커로 나와서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2012년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가 되었으며 첼시를 떠나서 중국의 상하이로 이적하게 되었다.









드록바 플레이 스타일은?

드록바의 플레이 스타일은 웨인루니나 호나우두처럼 미드필더까지 내려와서 치고 올라가는 스타일이아니라 최전방에서 대기하다가 공이오면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수비를 초토화 시키는 스타일이다.

그야말로 완성형 스트라이커라고 볼수있다. 강한 피지컬에 훌룡한 주력, 흑인 특유의 유연성도 갖추고 있는데다 제공권도 최상급이며 프리킥도 잘차는것이 장점인 선수다.

게다가 축구지능도 좋아서 연계와 패싱능력또한 수준급이라고 볼수있다.

드록바의 플레이를 보고있으며 그야말로 쫄깃하다. 그리고 테크닉적인 부분도 매우 훌룡하며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수 있는 퍼스트 터치로 방향 바꾸고 밀고나가기 , 다리를 뒤로 쭉 뻗어서 뒷발로 공잡아내기등의 플레이를 보면 매우 간결하고 우아하다. 

또한 당시 떡밥중 토레스 주력vs 드록바 주력이 있을만큼 속도 또한 압도적이었다. 전성기의 토레스의 주력은 매우 빨랐기 때문에 드록바도 얼마나 빠른지 느낄수 있다.

또한 드록바라고 하면 사기적인 슈팅력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불가능해보이는 무각의 골도 성공시키는것이 장점인 선수이다.

발목 힘이 워낙 세서 슛의 강도도 상당하고 자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강력한 슛팅이 나온다.

덕분에 원거리 골문앞 혼전,런닝 슛팅,터닝 슛팅 등등 상황가리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골을 때려넣을수 있는 최고의 결정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프리킥을 찰때 무회전을 많이 하는데 호날두는 인스텝으로 공을 임팩트있게 때리는것에 비해 드록바는 발안쪽으로 공을 밀어서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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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듀오 드록바 , 프랭크 램파드


첼시시절 프랭크 램파드의 시너지는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대단하였다. 램파드가 굉장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패스, 특히 상대라인을 깨부수는 독창적인 스루패스를 구사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드로그바에게 볼을 쉽게 연결해줄수 있었다.

그가 공격지역에 나가있는 드로그바에게 어떻게든 볼을 연결해준다면 드로그바가 특유의 피지컬을 통해 수비여럿을 달고 뛰었다.

그경우 수비에는 드로그바가 달고 뛴 수비수들만큼의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인데 첼시의 경우 이빈공간을 잘 노렸다.

미드필더들의 활동량이 워낙 많았고 윙포드들의 움직임이 좋았으므로 드로그바는 때에 따라서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할수 잇었다.

때로는 드록바의 빈공간을 램파드나 애쉬앙 같은 미드필더들에게 패스해서 슛찬스를 노리고 떼로는 윙포드들에게 공을 내주어서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쉽게 사용할수 있도록 하거나 드록바 때문에 찬스가 많이 나왔던건 사실이다.

램파드가 첼시에서 중앙 미드필더 보직으로 뛸때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록들을 쌓은 데에는 드록바의 역활이 컸다.

드록바는 9번의 결승전 경기에 출전해서 9골을 기록하였고 7번의 경기에서 승리하였다. 그가 유일하게 골을 넣지 못한 결승전은 07-08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뿐 비단 결승전뿐만 아니라 토너먼트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기적과도 같은 11-12시즌 나폴리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2차전에서 포문을 여는 첫골을 기록하였고, 홈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도 단 한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 시키며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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